언론보도

세상에 대한 관심 갖지 않으면 연극은 존재할 수 없다 [남도예술인] 공연 연출가 최영화 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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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무대 뒤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대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을 통해 우리 가까이에 있었던 셈이다. 그 뿐인가.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축제를 열기 위해 지역민과 문화예술인의 자문을 구할 때, 안정기에 접어든 축제가 나아갈 길을 모색할 때면 어김없이 그의 의견을 필요로 했다.

연극과 뮤지컬, 축제 연출가 최영화 호남대 미디어영상공연학과 교수(57)의 이야기다.

최영화 교수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월5일 광산구에 자리한 호남대 광산캠퍼스를 찾았다. 그가 있다는 복지관 1층 미디어영상공연학과 학과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제 막 업무를 마친 듯한 최 교수가 인사를 건넸다.

연극에 38년째 몸담아온 그는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지역의 정체성을 담보한 대표적 행사의 총감독을 도맡다시피했다.

최 교수는 20세부터 연극을 시작, 극단 ‘토박이’에서 활동을 전개하다 27세 때 ‘진달래피네’라는 극단을 꾸렸다. 30년 동안 한 극단을 이끌면서 극단 내에서 책임연출을 맡아 매년 창작극을 올렸고, ‘문예정터’라는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최 교수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극단 진달래피네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해 봄에 무등산을 내려오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진달래를 보고서 무릎을 ‘탁’ 쳤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피’(blood)와 ‘피다’(bloom)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서 ‘진달래피네’라고 극단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통일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해 이거다 싶었어요. 당시에는 독특한 이름이었죠.”

이른 나이에 극단을 꾸릴 생각을 한데에는 젊은 혈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서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하다 실패하면 다시 극복하고, 또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 시도했다고 한다. 실패를 두려워 해 잘 만들 생각만 했다면, 지금까지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진달래피네의 근래 활동에 대해 묻자 지난 3·1절 100주년을 맞아 광주의 유관순으로 불리우는 ‘윤혈녀’ 열사에 대한 스토리를 뮤지컬로 연출한 ‘3·1운동 그날, 우리의 손’과 제33회 광주연극제에서 ‘연극학‘개’론’(극본 공동창작·연출 최영화)을 선보였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그는 연출가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매년 창작극을 선보이는 등 다각도로 활동할 수 있는 이면에는 그의 연극에의 열정 때문이다. 그는 에둘러 ‘자신과의 약속’ 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최 교수의 열정과는 반대로 창작극을 올리는 극단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래서 창작극에 대한 걱정과 극복이 교차한다.

“창작극을 꾸준히 올리는 극단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몇 군데 남아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죠. 잘 알려진 작품과 경쟁해야 하는 등 리스크가 있어서죠. 언젠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 매년 연극제에 순수 창작 작품으로 참가하고, ‘세상을 녹인 작품’을 상연하려고 해요.”

‘세상을 녹인 작품’은 결국 그가 연극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과 연결돼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세상을 녹인 작품’의 조건의 하나로 다장르를 한데 아울러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예술이 분화되기 전의 ‘원시예술’을 주목해 왔어요. 저는 서로 다른 장르가 한데 어우러지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장르 간 넘나들기 또는 충돌이 이뤄지면,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작품을 하면서 토론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데 가장 중점을 두는 이유예요.”

 

여러 장르가 한 자리에 모이면 토론이 이뤄지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문화가 견인된다는 것이다. 토론 문화가 중요하고, 이같은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고민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배꼽티나 하의실종 패션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트렌드로 자리잡았듯 옳지 않은 문화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울러 최 교수는 교육자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만큼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웰메이드’만을 최고로 꼽는 현 시대의 시각을 질타하며, 연극을 시작하거나 연극판에서 뒹구는 이들이 보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각을 가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스스로가 세상살이의 이치와 방법을 연극을 통해 깨달은 것처럼, 이들이 ‘1등’과 ‘성공’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연과 삶의 이치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와 함께 그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연극은 존재할 수 없다”면서 “늘 세상이 새로운 사건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38년 동안 연극인생을 살아올 수 있었던 근거다. 중간에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고, ‘다시’, ‘더’, ‘또’ 해야될 것 같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그를 지금에 이르게 한 셈이다. 연극의 끈을 놓지 않은데에는 현재를 사는 사람으로서 책무를 느껴서다.

“지금까지 연극 인생을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극으로 보듬 듯 연극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제가 사회 속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렇기 때문에 제게 ‘연극은 곧 윤리적 도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운동권’이라거나 ‘거창한 큰 뜻’을 품고 임한다기 보다는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 연극을 통해 현시대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역에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축제가 경쟁하듯 열리는 상황을 꼬집었다. 특히 한 축제를 열더라도, 지역을 녹여내는 등 탄탄한 콘셉트의 축제가 아쉽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양산된 축제들을 지양하고, 테마별로 유사한 콘셉트를 한데 묶어 경쟁력있는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잊지 않았다.

“지역에 잡다한 축제들이 난무하고 있어요. 정체성마저 모호해 피로도가 높죠. 더더욱 지역 연구를 바탕으로 개념부터 쌓아 올린 축제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구요. ‘축제포화’ 또는 ‘축제공해’라는 생각이 들죠. 지역의 축제가 정체성을 구축하며 제 갈길을 가기 위해서는 커뮤니티를 형성해 평가 또는 관리 시스템이 필요한 때입니다.”